그 집에는 삼룡(三龍)이라는 벙어리 하인 하나가 있으니, 키가 본시 크지 못하여 땅딸보로 되었고, 고개가 빠지지 못하여 몸뚱이에 대가리를 갖다가 붙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몹시 크다. 머리는 전에 새꼬랑지 같은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으나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든지 푸하고 일어섰다. 그래서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마치 움둑가비가 서서 다니는 것같이 숨차 보이고 더뎌 보인다. 동리 사람들이 부르기를 삼룡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고, 언제든지 “벙어리” “벙어리”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앵모” “앵모” 한다. 그렇지만 삼룡이는 그 소리를 알지 못한다.
그도 이 집 주인이 이리로 이사를 올 때 데리고 왔으니,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하고 세차다. 눈치로만 지내가는 벙어리지만 말하고 듣는 사람보다 슬기로울 적이 있고, 평생 조심성이 있어서 결코 실수할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쓸고 소와 돼지의 여물을 먹이며, 여름이면 밭에 풀을 뽑고 나무를 실어들이고 장작을 패며, 겨울이면 눈을 쓸고 잔심부름이며 자질구레한 일 맡은 일 할 것 없이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럴수록 이 집 주인은 벙어리를 위해주며 사랑한다. 혹시 몸이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쉬게 해주고, 먹고 싶어하는 듯한 것은 먹이고, 입을 때 입히고 잘 때 재운다.
그런데 이 집에는 삼대독자로 내려오는 그 집 아들이 있다. 나이는 열일곱 살이나 아직 열네 살도 되어 보이지 않고, 너무 귀엽게 길리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버릇이 없고 어리광을 부리며, 사람에게나 짐승에게 잔인포악한 짓을 많이 한다.
동리 사람들은 그를
“호래자식!” “애비 속상하게 할 자식!” “저런 자식은 없는 것만 못해”
하고 욕들을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할 때마다 그의 영감을 보고
“그 자식을 좀 때려주구려. 왜 그런 것을 보고 가만두?”
하고 자기가 대신 때려주려고 나서면
“아니요. 아직 철이 없어 그렇지. 저도 지각이 나면 그렇지 않을 것이 아니요.”
하고 너그럽게 타이른다. 그러면 마누라는 왜가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철이 없기는, 지금 나이가 몇이오. 낼모레면 스무 살이 되는데. 또 며칠 아니면 장가를 들어서 자식까지 날 것이,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이오.”
하고 들이대며
“자식은 꼭 아버지가 버려놓았습니다. 자식 귀여운 것만 알았지 버릇 가르칠 줄은 모르니까―”
이렇게 싸움이 시작만 하려 하면 영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그 아들은 더구나 이 벙어리를 사람으로 알지도 않는다.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오고 가며 주먹으로 허구리를 지르기도 하고 발길로 엉덩이도 찬다.
그러면 그 벙어리는 어린것이 철없어 그러는 것이 도리어 귀엽기도 하고, 또는 그 힘없는 팔과 힘없는 다리로 자기의 무쇠 같은 몸을 건드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앙증하기도 하여, 돌아서서 빙그레 웃으면서 툭툭 털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버린다.
어떤 때는 낮잠 자는 벙어리 입에다가 똥을 먹일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자는 벙어리 두 팔 두 다리를 살며시 동여매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화승불을 붙여놓아, 질겁을 하고 일어나다가 발버둥질을 하고 죽으려는 사람처럼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이러할 때마다 벙어리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가득 들어찼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아들을 원망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병신인 것을 원망하였으며, 주인의 아들을 저주한다는 것보다 이 세상을 저주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눈물이 없었다. 그의 눈물은 나오려 할 때 아주 말라붙어버린 샘물같이 나오려 하나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그는 주인의 집을 버릴 줄 모르는 개 모양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밖에 없고 자기가 믿을 것도 여기 있는 사람들밖에 없는 줄 알았다.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는 것이 자기의 운명인 줄밖에 알지 못하였다. 자기의 주인 아들이 때리고 지르고 꼬집어뜯고 모든 방법으로 학대할지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으레 있을 줄밖에 알지 못하였다. 아픈 것도 그 아픈 것이 으레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요, 쓰린 것도 자기가 받지 않아서는 안 될 것으로 알았다. 그는 이 마땅히 자기가 받아야 할 것을 어떻게 해야 면할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하여본 일이 없었다.
그가 이 집에서 떠나가려 하거나 또는 그의 생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는 언제든지 그 주인 아들이 자기를 학대하고 또는 자기를 못살게 굴 때 그는 자기의 주먹과 또는 자기의 힘을 생각하여 보았다.
주인 아들이 자기를 때릴 때 그는 주인 아들 하나쯤은 넉넉히 제지할 힘이 있는 것을 알았다.
어떠한 때는 아픔과 쓰림이 자기의 몸으로 스미어들 때면 그의 주먹은 떨리면서 어린 주인의 몸을 치려 하다가는, 그는 그것을 무서운 고통과 함께 꽉 참았다.
그는 속으로
“아니다, 그는 나의 주인의 아들이다, 그는 나의 어린 주인이다.”
하고 꾹 참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얼핏 잊어버리었다. 그러다가도 동리 집 아이들과 혹시 장난을 하다가 주인 아들이 울고 들어올 때에는, 그는 황소같이 날뛰면서 주인을 위하여 싸웠다. 그래서 동리에서도 어린애들이나 장난꾼들이 벙어리를 무서워하여 감히 덤비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주인 아들도 위급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벙어리를 찾았다. 벙어리는 얻어맞으면서도 기어드는 충견 모양으로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싫어하지 않고 힘을 다하였다.
그해 가을이다. 주인의 아들이 장가를 들었다. 색시는 신랑보다 두 살이 위인 열아홉 살이다. 주인이 본시 자기가 언제든지 분별이 옅은 것을 한탄하여 신부를 고를 때에 첫째 조건이 문벌이 높아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문벌 있는 집에서는 그리 쉽게 색시를 내놓을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그 어떠한 영락한 양반의 딸을 돈을 주고 사오다시피 하였으니, 무남독녀의 딸을 둔 남촌 어떤 과부를 꿀을 발라서 약혼을 하고, 혹시나 무슨 딴소리가 있을까 하여 부랴부랴 성례를 시켜버렸다.
혼인할 때에 비용도 그때 돈으로 삼만 냥을 썼다. 그리고 아들의 처갓집에 며느리 뒤보아주는 바느질삯 빨래삯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이천오백 냥씩을 대여주었다.
신부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까지 상당히 견디기도 하고 또는 금지옥엽같이 길른 터이라, 구식 가정에서 배울 것 익힐 것은 못할 것이 없고, 또는 본래 인물이라든지 행동거지에 조금도 구김이 있지 않다.
신부가 오자 신랑의 흠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신부에게다 대면 두루미와 까마귀지.”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어.”
“색시에게 쥐여지내겠어.”
“신랑에겐 과하지.”
동리 집 말 좋아하는 여편네들이 모여 앉으면 이렇게 비평들을 한다. 어떠한 남의 걱정 잘하는 마누라님은 간혹 신랑을 보고는 그대로 세워놓고
“글쎄 인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셈이 좀 나요. 저러고 어떻게 색시를 거느려가누. 색시방에 들어가기가 부끄럽지 않담.”
하고 들이대다시피 하는 일이 있다.
이럴 적마다 신랑의 마음은 그 말하는 이들이 미웠다. 일부러 자기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 후에 그를 만나면 말도 안 하고 인사도 하지 아니한다.
또 그의 고모 되는 이가 와서 자기 조카를 보고
“인제는 어른이야. 너도 그만하면 지각이 날 때가 되지 않았니. 네 처가 부끄럽지 아니하냐.”
하고 타이를 적마다, 그의 마음은 그 말하는 사람이 부끄럽다는 것보다도 자기를 이렇게 하게 한 자기 아내가 더욱 밉살머리스러웠다.
“여편네가 다 무엇이냐? 저 빌어먹을 년이 들어오더니 나를 이렇게 못살게 들구지.”
혼인한 지 며칠이 못 되어 그는 색시방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집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마치 돼지나 말새끼를 흘레시키려는 것같이 신랑을 색시방으로 집어넣으려 하나 막무가내였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 때려서 자기의 외사촌 누이의 이마를 뚫어서 피까지 나게 한 일이 있었다. 집안 식구들은 하는 수가 없어 맨 나중으로 아버지에게 미루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을뿐더러 풍파를 더 일으키게 하였다.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들어와서는 닷자곳자로 신부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마루 한복판에 태질을 쳤다. 그러고는
“이년, 네 집으로 가거라. 보기 싫다. 내 눈앞에는 보이지도 마라.”
하였다. 밥상을 가져오면 그 밥상이 마당 한복판에서 재주를 넘고, 옷을 가져오면 그 옷이 쓰레기통으로 나간다.
이리하여 색시는 혼인 오던 날부터 팔자 한탄을 하고서 날마다 밤마다 우는 사람이 되었었다.
울면은 요사스럽다고 때린다. 또 말이 없으면 빈충맞다고 친다. 이리하여 그 집에는 평화스러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
이것을 날마다 보는 사람 가운데 알 수 없는 의혹을 품게 된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곧 벙어리 삼룡이었다.
그렇게 어여쁘고 그렇게 유순하고 그렇게 얌전한, 벙어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만치 선녀 같은 색시를 때리는 것은, 자기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의심이다.
보기에도 황홀하고 건드리기도 황송할 만치 숭고한 여자를 그렇게 학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세상에 있지 못할 일이다. 자기는 주인 새서방님에게 개나 돼지같이 얻어맞는 것이 마땅한 이상으로 마땅하지만, 선녀와 짐승의 차가 있는 색시와 자기가 똑같이 얻어맞는다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어린 주인이 천벌이나 받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였다.
어떠한 달밤, 사면은 고요 적막하고 별들은 드문드문 눈들만 깜박이며, 반달이 공중에 두렷이 달려 있어 수은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닦아낸 듯이 청명한데, 삼룡이는 검둥개 등을 쓰다듬으며 밭마당 멍석 위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있어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하여 보았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매 공중에 있는 달보다도 더 곱고 별들보다도 더 깨끗하였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달이 보이고 별이 보이었다. 삼라만상을 씻어내는 은빛보다도 더 흰 달이나 별의 광채보다도 그의 마음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듯하였다. 마치 달이나 별이 땅에 떨어져 주인 새아씨가 된 것도 같고, 주인 새아씨가 하늘에 올라가면 달이 되고 별이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자기를 어린 주인이 때리고 꼬집을 때 감히 입 벌려 말을 하지 못하나, 측은하고 불쌍히 여기는 정이 그의 두 눈에 나타나는 것을 다시 생각할 때, 그는 부들부들한 개 등을 어루만지면서 감격을 느끼었다. 개는 꼬리를 치며 자기를 귀여워하는 줄 알고 벙어리의 손을 핥았다.
삼룡이의 가슴은 주인 아씨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또는 그를 위하여서는 자기의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분에 넘쳤었다. 그것이 마치 살구를 보면 입 속에 침이 도는 것같이 본능적으로 느끼어지는 감정이었다.